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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직 예수 그리스도
세상살이/시

이정하 시 모음

by 어린양01 2013. 2. 27.

이정하 시인 시 모음

 

 

[목차]

이정하 시인 소개
한 사람을 사랑했네

기원
드러낼 수 없는 사랑
꽃잎
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마음의 감옥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그대가 생각이 났습니다
빈들2
그대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낮은 곳으로.
사랑의 이율배반
주는 사랑 (2)
가까운 거리
밤새 내린 비
그리우면 가리라
내가 빠져 죽고 싶은 강, 사랑, 그대
너의 모습
바람 속을 걷는 법 2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
슬픈 약속
흔들리며 사랑하며
사랑이란 이름의 종이배
떠나는 이유
조용히 손을 내밀었을때
그를 만났습니다
사랑의 우화
떠날 준비
우울한 하루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예감
그는 떠났습니다
사랑은 보내는 자의 것
멀리서만
너 없는 세상
다시 섬진강변에서
섬진강변에서
추억에 못을 박는다
흔적
창작
저만치 와 있는 이별
창가에서
단풍잎 사랑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다
첫눈
살아 있기 때문에
사랑이 내 삶의...

부르면 눈물 날것 같은 그대
작은 기도
낮고 깊게
고슴도치 사랑
한밤에서 새벽 까지.
길의 노래
호두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중의 한 사람
씻은 듯이 아물 날
진작부터 비는 내리고 있었습니다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밤새 1
밤새 2
참회
거짓웃음
촛불
밖을 향하여
수평선 지우기
사랑했던 날보다
진실로
눈이 멀었다
이쯤에서 다시 만나게 하소서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
사랑할수 없음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밤열차를 탔다 5
사랑한다 해도
그대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아도 좋다
비오는 날의 일기
무소유...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창문과 달빛
그를 위해서라면
낮고 깊게 묵묵히 사랑하라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홀씨
당신이 그리운 건
내 마음의 빈터
삶의 오솔길을 걸으며
슬픔 안의 기쁨
살아가다가 살아가다가 무덤덤해지면
늘 곁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
허수아비
당신을 향한 그리움
내가 할 수 없는 한가지
저녁 별
네가 좋아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부치지 못한 편지
거짓 웃음
애수
섬 1, 섬 2
내 가슴 한쪽에
내 모든 것 그대에게 주었으므로
난 너에게

물길
기다리는 이유
사랑은
사랑
아직도 기다림이 있다면 행복하다
이쯤에서
황혼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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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 시인 소개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대륜중.대건고.원광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경남신무>.<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온 이후,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1994),
그대를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1997)
등의 시집과
우리 사는 동안에 1,2(1992), 소망은 내 지친 등을 떠미네(1993),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1996), 내가 길이 되어 당신께로(1997),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1, 2(1998),
아직도 기다림이 남아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1999)
등의 산문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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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사랑했네



사랑을 얻고 나는 오래도록 슬펐다.
사랑을 얻는다는 건
너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아니었으므로
너를 체념하고 보내는 것이었으므로.

너를 얻어도,혹은 너를 잃어도
사라지지 않는 슬픔 같은 것.
아아 나는 당신이 떠나는 길을 막지 못했네.
미치도록 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 슬픔에 빠져 나는 세상 다 살았네.
세상살이 이제 그만 접고 싶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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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이 한세상 살아 가면서
슬픔은 모두 내가 가질테니
당신은 기쁨만 가지십시오.
고통과 힘겨움은 내가 가질테니
당신은 즐거움만 가지십시오.

줄 것만 있으면 나는 행복하겠습니다.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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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낼 수 없는 사랑


비록 그 사랑이 아픈 사랑일지라도
남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말로 할 수 없는 사랑, 그래서 혼자의 가슴속에만
묻어 두어야 하는 사랑을 가진 사람에 비해서.

밝힐 수 없는 사랑.
결코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사랑,
그러나 그 사람에겐
오래 간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자신의 가슴이 잿더미가 되는 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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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그대를 영원히 간직하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은
어쩌면 그대를 향한 사랑이 아니라.
쓸데없는 집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를 사랑한다는 그 마음마저 버려야
비로소 그대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음을.
사랑은 그대를 내게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훌훌 털어 버리는 것임을.
오늘 아침 맑게 피어나는 채송화 꽃잎을 보고
나는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꽃잎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햇살을 받치고 떠 있는 자줏빛 모양새가 아니라
자신을 통해 씨앗을 잉태하는,
그리하여 씨앗이 영글면 훌훌 자신을 털어 버리는
그 헌신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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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그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노라고 말하지 말라.
사랑은, 주면 줄수록 더욱 넉넉히 고이는 샘물 같은 것.
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그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노라고 말하지 말고
마지막 남은 눈물마저 흘릴 일이다.

기어이 가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붙잡지 말라.
사랑은, 보내 놓고 가슴 아파하는 우직한 사람이 하는 일.
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떠나는 그의 앞길을 막아서지 말고
그를 위해 조용히 고개 끄덕여 줄 일이다.

사랑이란 그런거다.
그를 위해 나는 한 발짝 물러서는 일이다.
어떤 아픔도 나 혼자서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진실로 사랑한다면, 그를
내 안에만 가둬 두지 않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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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감옥


나로 인해 그대가 아플까 해서
나는 그대를 떠났습니다.
내 사랑이 그대에게 짐이 될까 해서
나는 사랑으로부터 떠났습니다.

그리우면 울었지요.
들개처럼 밤길을 헤매 다니다,
그대 냄새를 좇아 킁킁거리다 길바닥에 쓰러져
그대로 잠이 든 적도 있었지요.가슴이 아팠고,
목이 메기도 했습니다.그렇지만 그대는
가만 계세요.나만 아파하겠습니다.

사랑이란 이처럼 나를 가두는 일인가요.
그대 곁에 가고 싶은 나를
철창 속 차디찬 방에 가두는 일인가요.
아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풀었다 가두는 이 마음 감옥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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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눈을 뜨면 문득 한숨이 나오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
불도 켜지 않은 구석진 방에서
혼자 상심을 삭이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정작 그런 날 함께 있고 싶은 그대였지만
그대를 지우다 지우다 끝내 고개 떨구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그대를 알고 부터 지금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사랑한다
사랑한다며 내 한 몸 산산히 부서지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할 일은 산같이 쌓여있는데도
하루종일 그대 생각에 잠겨
단 한 발짝도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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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생각이 났습니다


햇살이 맑아 그대가 생각났습니다.
비가 내려 또 그대가 생각났습니다.
전철을 타고 사람들속에 섞여 보았습니다만
어김없이 그대가 생각났습니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았습니다만
그런 때일수록 그대가 더 생각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숱한 날들이 지났습니다만
그대를 잊을 수 있다 생각한 날은 하루도 없었습니다.
더 많은 날들이 지나간대도
그대를 잊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날 또한 없을 겁니다.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지만
숱하고 숱한 날 속에서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어김없이 떠오르던 그대였기에
감히 내 평생
그대를 잊지 못하리라 추측해 봅니다.
당신이 내게 남겨준 모든 것들,
그대가 내쉬던 작은 숨소리 하나까지도
내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는 것은
아마도 이런 뜻이 아닐는지요.
언젠가 언뜻 지나는 길에라도 당신을 만날 수 있다면,
스치는 바람편에라도 그대를 마주할 수 있다면
당신께,
내 그리움들을 모조리 쏟아 부어 놓고, 펑펑 울음이라도...,
그리하여 담담히 뒤돌아서기 위해서입니다
아시나요, 지금 내 앞에 없는 당신이여.
당신이 내게 주신 모든 것들을 하나 남김없이
돌려주어야 나는 비로소 홀가분하게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아침엔 장미꽃이 유난히 붉었습니다.
그래서 그대가 또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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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들2


아버지는 맨손으로 들어오는 때가 없었다.
유독 많은 눈이 이 들판을 덮어도
아버진 눈 속을 헤쳐 땅에 박혀있는 농약병, 땔나무
하다못해 지푸라기 하나라도 주워들고 오셨다.
그렇게 알뜰히 가난을 모으고 모아
자식들한테는 물려주지 말아야지
너희들 앞길만은 반듯하게 닦아놓아야지, 하시더니
그 길로 어머니 꽃상여 보내신다.

시신이야 썩지 않아 다행이지만
꽁꽁 언 땅에 어디 삽이나 제대로 들어갈까.
너희 엄마 살아 생전 고생 못 면하더니
죽어서도 여전히 추운 살림이구나
얼음장 같은 요령소리 뒤따라가며
요령소리보다 더 큰 헛기침 내뱉으며
아버지 돌아서서 평생 없던 눈물 보이신다.

아버지 그날 이후
빈 들 바라보는 일 잦으시고
마을에서 밤 늦도록 술을 마시는 날이면
그대로 영영 취해버렸으면 싶었다.
그러다가도 아버지
새벽녘, 이 들판 건너올 때 혼자 오시는 법 없었다.
언제나 어머니를 가슴에 안고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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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그대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아도 좋다
찬비에 젖어도 새잎은 돋고
구름에 가려도 별은 뜨나니
그대 굳이 손 내밀지 않아도 좋다
말한번 건네지도 못하면서
마른 낙엽처럼 뜨겁게 타오른 나는
혼자 뜨겁게 사랑한다.
나 스스로 사랑이 되면 그 뿐,
그대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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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으로.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물처럼 고여들 네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나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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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율배반


그대여
손을 흔들지 마라.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떠나는 사람은 아무 때나
다시 돌아오면 그만이겠지만
남아 있는 사람은 무언가.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가.

기약도 없이 떠나려면
손을 흔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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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사랑 (2)


누군가를 사랑할 때
자신은 비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무조건 주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한 방울의 물이 시냇물에 자신을 내어주듯이
사랑이라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그대에게 주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단 한순간이라도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당신 자신은 비어 있어야 합니다.

그때 사랑은 비로소 두 사람 사이를 흐릅니다.
그 비밀스런 문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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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거리


그녀의 머리냄새를 맡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고 싶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영원히라도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댄 이런 나를 타이릅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함께 있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여전히 난 이해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대와 함께 있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데
왜 우린 멀리 떨어져서 서로를 그리워해야 하는지.
왜 서로보다 하고 있는 일이 먼저인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나중을 위해 지금은 참자는 말,
그 말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도 나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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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내린 비



간밤에 비가 내렸나 봅니다.
내 온몸이 폭삭 젖은 걸 보니


그대여, 멀리서 으르렁대는 구름이 되지 말고
가까이서 나를 적시는 비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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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우면 가리라


그리우면 울었다. 지나는 바람을 잡고 나는 눈물을 쏟
았다. 그 흔한 약속 하나 챙기지 못한 나는 날마다 두리
번거렸다. 그대와 닮은 뒷모습 하나만 눈에 띄어도 가슴
이 철렁 내려앉았다. 들개처럼 밤새 헤매어도 그대 주변
엔 얼씬도 못했다. 냄새만 킁킁거리다가 우두커니 그림
자만 쫓다가 새벽녘 신열로 앓았다. 고맙구나 그리움이
여, 너마저 없었다면 그대에게 가는 길은 영영 끊기고 말
았겠지. 그리우면 가리라, 그리우면 가리라,고 내내 되뇌
다 마는 이 지긋지긋한 독백, 이 진절머리나는 상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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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빠져 죽고 싶은 강, 사랑, 그대


저녁 강가에 나가
강물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때마침 강의 수면에
노을과 함께 산이 어려 있어서
그 아름다운 곳에
빠져 죽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것은
가끔 사람을 어지럽게 하는 모양이지요.
내게 있어 그대도 그러합니다.
내가 빠져 죽고 싶은
이 세상의 단 한 사람인 그대.

그대 생각을 하며
나는 늦도록 강가에 나가 있었습니다.
그 순간에도 강물은 쉬임 없이 흐르고 있었고,
흘러가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라

세월도, 청춘도, 사랑도, 심지어는
나의 존재마저도 알지 못할 곳으로 흘러서
나는 이제 돌아갈 길 아득히 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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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모습


산이 가까워질수록
산을 모르겠다.
네가 가까워질수록
너를 모르겠다.

멀리 있어야 산의 모습이 또렷하고
떠나고 나서야 네 모습이 또렷하니
어쩌란 말이냐,이미 지나쳐 온 길인데.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인데.

벗은 줄 알았더니
지금까지 끌고 온 줄이야.
산그늘이 깊듯
네가 남긴 그늘도 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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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속을 걷는 법 2


바람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그래, 산다는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바람 속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두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
바람이 드셀수록 왜 연은 높이 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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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가지 못하고
나는 서성인다.

내 목소리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이름이여,
차마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다만 보고 싶어진다고만 말하는 그대여,
그대는 정녕 한 발짝도
내게 내려오지 않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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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 우산보다
함께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거임을
울고 있는 사람에겐 손수건 한 장보다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이
더욱 필요한 것임을.

그대를 만나고서부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대여, 지금 어디 있는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말도 못 할 만큼
그대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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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약속


우리에겐 약속이 없었다
서로의 눈빛만 응시하다
돌아서고 나면 잊어야 했다.
그러나 하루만 지나도
어김없이 기다려지는 너와의 우연한 해우.
그저 무작정 걸어봐도
묵은 전화수첩을 꺼내 소란스럽게 떠들어 봐도
어인 일인가,
자꾸만 한쪽 가슴이 비어옴은.

수없이 되풀이한 작정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네가 닿았음직한 발길을 찾아나선다.
머언 기약도 할 수 없다면
이렇게 길이 되어 나설 수밖에.
내가 약속이 되어 나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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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사랑하며


이젠 목마른 젊음을
안타까워하지 않기로 하자.
찾고 헤매고 또 헤매이고
언제나 빈손인 이 젊음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하자.

누구나 보균하고 있는
사랑이란 병은 밤에 더욱 심하다.
마땅한 치유법이 없는 그 병의 증세는
지독한 그리움이다.

기쁨보다는 슬픔
환희보다는 고통, 만족보다는
후회가 더 심한 사랑, 그러나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어찌 그대가 없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랴

길이 있었다. 늘 혼자서
가야하는 길이었기에 쓸쓸했다.
길이 있었다. 늘 흔들리며
가야하는 길이었기에 눈물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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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이름의 종이배

1
때때로 난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가 지금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는지 또한 알고 싶었다.
당신은 당신의 아픔을 자꾸 감추지만
난 그 아픔마저 나의 것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2
그러나 언제나 사랑은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가만히 놓아 주지 않았다.
이미 내 손을 벗어난 종이배처럼
그저 물결에 휩쓸릴 뿐이었다.
내 원하는 곳으로 가주지 않는 사랑
잔잔하고 평탄한길이 있는데도
굳이 험하고 물살 센 곳으로 흐르는 종이배
사랑이라는 이름의 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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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이유


떠나는 사람에겐 떠나는 이유가 있다
왜 떠나는가 묻지 말라

그대와 나 사이에 간격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묻지 말라

괴로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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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손을 내밀었을때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나에게 손을 내민 것처럼
나 또한 나의 손을 내밀어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다.
그 작은 일에서부터 우리의 가슴이 데워진다는 것을
새삼 느껴보고 싶다
그대여 이제 그만 아파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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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났습니다


그를 만났습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반갑게 차 한 잔 할 수 있는
그를 만났습니다.
방금 만나고 돌아오더라도
며칠을 못 본 것 같이 허전한
그를 만났습니다.
내가 아프고 괴로울 때면
가만히 다가와 내 어깨를 토닥거려주는
그를 만났습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날이면
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지는
그를 만났습니다.
어디 먼 곳에 가더라도
한 통의 엽서를 보내고 싶어지는
그를 만났습니다.
이 땅 위에 함께 숨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그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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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우화


내 사랑은 소나기였으나
당신의 사랑은 가랑비였습니다.
내 사랑은 폭풍우였으나
당신의 사랑은 산들바람이었습니다.

그땐 몰랐지요.
한때의 소나긴 피하면 되나
가랑비는 피할 수 없음을.
한때의 푹풍우야 비켜가면 그뿐
산들바람은 비켜갈 수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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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준비


그냥 떠나십시오
떠나려고 굳이 준비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당신은 끝까지 가혹합니다.
떠남 자체가 괴로운 것이 아니고
떠나려고 준비하는 그대를 보는 것이
괴로운 것을.

올 때도 그냥 왔듯이
갈 때도 그냥 떠나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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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하루


낙엽이 떨어졌었죠.
내 마음 깊은 곳으로
그대를 만난지 하루만 지나도
내 마음은 우울병을 앓는답니다.
어떤 독한 약을 먹어도 고쳐지지 않는

기다리지 않기로 해놓고
혼자 있을 땐 혼자의 생활에 충실하기로 해놓고
난 또 멍청히 전화기만 내려다 봅니다
지금쯤 연락이 올 때도 됐는데 연락이 오지 않으면
내 마음 그렇게 우울할 수 가 없어요
슬픈 나뭇잎만 가득 쌓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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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 될 것 같은 예감


아무리 짧은 순간이더라도
이별이란 정말 못 할 짓입니다.
서로의 가슴에 피멍이 드는 일입니다.

당신은 내가 못믿는게 아닙니다.
떠나는 순간까지 웃음을 보이며
내 두 손을 꼭 잡아준 당신을
내가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내게 보이던 당신의 웃음
그 웃음이 마지막이 될 것같은 예감이
자꾸만 드는 것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리의 운명,
그 운명이 믿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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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떠났습니다


그는 떠났습니다
떠남이 있어야 돌아옴도 있는 거라며 그는
마지막 가는 길까지 내게 웃음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왜 모르겠습니까,
그 웃음 뒤에 머금은 눈물을.
그의 무거운 발자국 소리를 가슴에 담으며
나는 다만 고개를 숙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뛰어가서 막어서고 싶었지만
도저히 난 그럴 수 없었습니다.
먼 훗날을 위해 떠난다는 그를
어떻게 잡을 수 있겠습니까.
입술만 깨물수 밖에.
내가 고개를 숙이는 동안
그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그래서야 내 몸은 슬픔의 무게로
천 길 만 길 가라앉습니다.
그는 떠났고 나는 남아 있습니다만
실상 남아있는 건 내 몸뚱아리 뿐입니다.
내 영혼은 이미 그를 따라나서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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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보내는 자의 것


미리 아파하지 마라.
미리 아파한다고 해서
정작 그 순간이 덜 아픈 것은 아니다.

그대 떠난다고 해서
내내 배갯잇에 얼굴을 묻고만 있지 마라.
퍼낼수록 더욱 고여드는 것이 아픔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현관문을 나서 가까운 교회라도 찾자.
그대, 혹은 나를 위해 두 손 모으는 그 순간
사랑은 보내는 자의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미리 아파하지 마라.
그립다고 해서
멍하니 서 있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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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만


찾아나서지 않기로 했다.
가기로 하면 가지 못할 일도 아니나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그리움만 안고 지내기로 했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그대가 많이 변했다니
세월따라 변하는 건 탓할 건 못 되지만

예전의 그대가 아닌 그 낭패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멀리서 멀리서만
그대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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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는 세상


이상한 일이지요, 당신을 생각하면
왜 쓸쓸함이 먼저 앞서오는 것인지,
따스한 기억도 많고 많았는데
그 따스함마저 왜 쓸쓸하게 다가오는 것인지.

혼자 걷다 보면 어느덧
눈에 익숙한 거리로 들어설 때가 있지요.
모든 건 다 제자리에 있는데
단지 당신만이 없는 이곳.

바람이 불었습니다.
낙엽이 떨어졌습니다.
당신이 없는 나의 세상은 그저
이렇게 텅 비어만 가는가 봅니다.
오랫동안 나의 마음 당신을 향해 있었고
그보다 더 오래 당신을 잃고
나는 슬펐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하루
나는 잠시만 슬퍼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 포기한 것들에 대해
그리하여 온통 내 몫이 된
이 쓸슬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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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섬진강변에서


어딜 가더라도 우리끼리 모여 살자.
함께 있으면 서러움은 조금 덜할 테지.
살다보면 이같이 하늘이 푸를 때
섬진강변 그 고운 그늘이 그리운 날도 있을 테지.
그럴 때면 개망초야
몰래 부둥켜안고 실컷 울음 울자꾸나.
우리 눈물로 고향의 풀씨를 키우고
꽃을 피워 여기 한 숲을 이루자꾸나.


내 먼저 죽으면 살점은 태우고
남아 있는 뼈 곱게 갈아 강물에 뿔려다오.
물고기라도 살찌워, 그 살찐 물고기 따라
고향땅에 갈 수 있겠지.
그때까지 만이라도 개망초야
우리 함께 살자, 우리 함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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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변에서



그만 눈물 그쳐라 개망초야.
그래도 우리를 이어주는 것은
버림받은 힘이 아니더냐.
뿌리째 뽑혀 이렇게 흘러가다 보면
어디 정 붙이고 살 데도 있을 테지.
다시 뿌리 박고 살 데도 있을 테지.


누굴 탓한들 무엇할까 개망초야.
따지고 보면 다 우리 탓인걸.
지지리도 못난 우리 죄인걸.
저기 갈대를 보아라 떠내려가는 것은
우리뿐, 여직 힘차게 서걱이고 있지 않는냐.
하기야 저 갈대마저 남아 있지 않다면
여기가 대대로 살아온 우리 땅이었는지
어이 알리. 서러움 꾹꾹 누르고
흘러가면 그 뿐, 흘러가다 멈추는 그곳에다
정 붙이고 살면 되지 개망초야.
왜 자꾸 뒤돌아보느냐.
왜 자꾸 뒤돌아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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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못을 박는다


잘 가라, 내 사랑
너를 만날 때부터 나는
네가 떠나는 꿈을 꾸었다.
저문 해가 다시 뜨기까지의
그 침울했던 시간,
그 동안에 나는 못질을 한다.
다시는 생각나지 않도록 서둘러
내 가슴에
큰 못 하나를 박았다.

잘 가라, 내 사랑
나는 너를 보내고 햄버거를 먹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뒤돌아 서서
햄버거를 먹다가
목이 막혀 콜라를 마셨다.

잘 가라, 내 사랑
네가 나를 버린 게 아니라
내가 너를 버린 게지.
네가 가고 없을 때 나는 나를 버렸다.
너와 함께 가고 있을 나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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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칼국수를 먹다가 그대가 생각났습니다. 유난히 칼국수를

좋아했던 그대였기에.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조곡을

듣다가도 그대가 떠올라 눈물 글썽입니다. 유난히 그대가

즐겨 듣던 곡이었기에. 나는 이제 그대가 좋아하는 음식,

그대가 좋아하는 음악, 그대가 좋아하는 색깔과 모양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이제는 어느덧 그대가

좋아하는 것만이 아닌 내게도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 되어

있는 온갖 것들. 그것들이 그대가 떠난 빈자리를 채워 주

다가 그대를 더욱 생각나게 하는 추억이 되어 내게 눈물

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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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사랑했으므로 내 모든 것이 재만 남았더라도

사랑하지 않아 나무토막 그대로 있는 것보다는 낫느니.



시집 "어쩌면 그리 더디 오십니까"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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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와 있는 이별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다
문득 비가 내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요 며칠, 해가 떴는지
바람이 부는지
도통 몰랐습니다.

어둠만 있었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시집 "어쩌면 그리 더디 오십니까"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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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서


비 갠 오후,
햇살이 참 맑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세상이 왜 그처럼 낯설게만 보이는지

그대는 어째서
그토록 순식간에 왔다 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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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잎 사랑



언젠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안에 난 내 모든 것을 풀어 놓았습니다

가을날 단풍잎에게 가서 물어 보십시요

낙엽이 되어 떨어질 걸 뻔히 알면서도

왜 그 순간까지 자기 몸을 남김없이 태우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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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다



햇빛은 싫습니다
그대가 오는 길목을 오래 바라볼 수 없으므로
비에 젖으면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비에 젖을수록 오히려 생기 넘치는 은사시나무,
그 은사시나무의 푸르름으로 찍혀 있고 싶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대
비 오는 날이라도 상관없어요
아무런 연락 없이 갑자기 오실 땐
햇빛 좋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제격이지요
그대의 젖은 어깨, 그대의 지친 마음을
기대게 해주는 은사시나무, 비 오는 간이역,
그리고 젖은 기적소리.
스쳐 지나가는 급행열차는 싫습니다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버려
차창 너머 그대와 닮은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그대처럼 더디게 오는 완행열차,
그 열차를 기다리는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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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


아무도 없는 뒤를 자꾸만 쳐다보는 것은

혹시나 네가 거기 서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너는 아무데도 없었다.



낙엽이 질 때쯤 나는 너를 잊고 있었다.

색 바랜 사진처럼 까맣게 너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첫눈이 내리는 지금, 소복소복 내리는 눈처럼

너의 생각이 싸아하니 떠오르는 것은 어쩐 일일까.

그토록 못잊어 하다가

거짓말처럼 너를 잊고 있었는데

첫눈이 내린 지금,



자꾸만 휑하니 비어오는 내 마음에

함박눈이 쌓이듯 네가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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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기 때문에


흔들리고 아프고 외로운 것은
살아 있음의 특권이었네.
살아 있기 때문에 흔들리고,
살아 있기 때문에 아프고,
살아 있기 때문에 외로운 것.
오늘 내가 괴로워하는 이 시간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에겐
간절히 소망했던 내일.

지금 내가 비록 힘겹고 쓸쓸해도
살아 있음은 무한한 축복.
살아 있으므로 그대를 만날 수 있다는
소망 또한 가질 수 있네.
만약 지금 당신이 흔들리고 아프고 외롭다면,
아아 아직까지 내가 살아 있구나 느끼라.
그 느낌에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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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내 삶의...


사랑이라는 것,

그것이 불빛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네.

밤기차를 타고 멀리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위안을 줄 수 있는 불빛 같은 것.

그 불빛 하나로

깜깜한 밤을 지새는 사람에게

새벽 여명을 기다릴 수 있게 하는

한 줄기 소망 같은 것.



사랑이라는 것,

그것이 나무그늘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네.

힘겨운 삶의 짐을 지고 가다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 쉬었다 갈 수 있게 하는 나무 그늘.

그 무성한 잎새 아래 땀을 식히다

멀리 바라보는 석양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이라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쉼표 같은 것이었다가

마침내

마지막 가는 길에 손 흔들어주는

만장(挽丈)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네.



"어쩌면 그리 더디 오십니까"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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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밤열차를 타본 적이 있습니까?

플랫폼의 가로등이 소슬히 비에 젖고 있을 때

비옷을 입은 역무원이 혼자 깃발을 흔드는 것을

무심코 바라본 적이 있습니까?



삶이란 것도,

내가 그리워한 사랑이라는 것도

저렇게 배웅을 받으며 떠나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며

밤열차에 몸을 실은 적이 있습니까?


"어쩌면 그리 더디 오십니까"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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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무게


구름이 많이 모여 있어

그것을 견딜 만한 힘이 없을 때

비가 내린다.



슬픔이 많이 모여 있어

그것을 견딜 만한 힘이 없을 때

눈물이 흐른다.



밤새워 울어본 사람은 알리라.

세상의 어떤 슬픔이든 간에

슬픔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를.

눈물로 덜어내지 않으면

제 몸 하나도 추스를 수 없다는 것을.




이상한 일입니다. 사랑을 나눠보면 슬픔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도

사람들은 사랑을 하지 못해 안달입니다. 약간의 기쁨, 그 불확실한 기쁨을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 전체가 슬픔에 젖어 산다 해도 능히 그것을 감수합니다.
- 이정하


잠언시집 "어쩌면 그리 더디 오십니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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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면 눈물 날것 같은 그대



내 안에 그대가 있습니다

부르면 눈물이 날것 같은

그대의 이름이 있습니다.



별이 구름에 가렸다고해서

반짝이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대가 내 곁에 없다고 해서

그대를 향한 내 마음이

식은 것은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랑엔

늘 맑은 날만 있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찌 보면

구름이 끼여 있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난 좌절하거나 주저앉지 않습니다.

만약 구름이 없다면

어디서 축복의 비가 내리겠습니까

어디서 내 마음과 그대의 마음을

이어주는 무지개가 뜨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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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도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게 하소서.
그리움으로 가슴 아프다면
그 아픔마저 행복하다 생각하게 하소서.
그리워할 누가 없는 사람은
아플 가슴마저도 없나니
아파도 나만 아파하게 하소서.
둘이 느끼는 것보다 몇 배 더하더라도
부디 나 한 사람만 아파하게 하소서.
간구하노니
이별하고 아파하는 이 모든 것
그냥 한번 해보는 연습이게 하소서.
다시 만나 더욱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다시는 헤어져 있지 않게 하기 위한
그런 연습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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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깊게



묵묵히 사랑하라.
깊고 참된 사랑은 조용하고
말이 없는 가운데 나오나니
진실로 그 사람을 사랑하거든
아무도 모르게
먼저 입을 닫는 법부터 배우라.
말없이 한 발자국씩.


그가 혹시 오해를 품고 있더라도
굳이 변명하지 마라.
그가 당신을 멀리할수록
차라리 묵묵히 받아들이라.
마음 밑바닥에 스며드는 괴로움은
진실로 그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니
그가 당신을 멀리할 때는
차라리 조금 비켜 서 있으랴


그대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를 위해
외려 두 손 모아 조용히 기도하다보면
사랑은,
어디 먼 곳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마음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이란 그런 거다. 그를 위해 나는 한 발짝 물러서 있는 거다.
못내 쓸쓸하겠지만 그 쓸쓸함마저 감수하는 일이다.
아아 사랑이여,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 슬픔에 빠져 나는 세상 다 살았네.


시집 "어쩌면 그리 더디 오십니까"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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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사랑



서로 가슴을 주어라.
그러나 소유하려고는 하지 말라.
소유하고자 하는 그 마음 때문에
고통이 생기나니.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사랑했네.
추위에 떠는 상대를 보다못해
자신의 온기만이라도 전해주려던 그들은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상처만 생긴다는 것을 알았네.
안고 싶어도 안지 못했던 그들은
멀지도 않고 자신들의 몸에 난 가시에 다치지도 않을
적당한 거리에 함께 서 있었네.
비록 자신의 온기를 다 줄 수 없었어도
그들은 서로 행복했네.
행복할 수 있었네.


시집 "어쩌면 그리 더디 오십니까"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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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서 새벽 까지.


누가 제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별은 스스로가 빛난다.
수없이 많은 별들 중에서도
그 어느 하나 빛을 내지 않는 별은 없다.


우리들 잠든 영혼을 깨워주는 종소리
잠에 취해 혼미한 새벽,
잠결에도 우리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저 맑은 종소리는 도대체 누가 울리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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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노래



이정하


너에게 달려가는 것보다
때로 멀찍이 서서 바라보는 것도
너를 향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겠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보다
묵묵히 너의 뒷모습이 되어 주는 것도
너를 향한 더 큰 사랑인줄을 알겠다.

너로 인해 너를 알게 됨으로
내 가슴에 슬픔이 고이지 않는 날이 없었지만
네가 있어 오늘 하루도 넉넉하였음을...

네 생각마저 접으면
어김없이 서쪽하늘을 붉게 수놓은 저녁해
자신은 지면서도 세상의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주는
그 숭고한 헌신을 보며,

내 사랑 또한
고운 빛깔로 마알갛게 번지는
저녁해가 되고 싶었다.

마지막 가는
너의 뒷모습까지 감싸줄 수 있는
서쪽 하늘,
그 배경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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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



외로움이 깊으면 겉은 야무진 법이다.
그러나 속은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슬픔 위에 슬픔이 겹쳤네.
내 삶의 옹이진 부분,
잘못하기만 한 내 사랑이여..
내가 만든 벽 때문에
나도 옴싹달싹 못할 줄이야.


슬픔위에 슬픔이 겹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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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고 싶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잎보다 먼저 꽃이 만발하는 목련처럼
사랑보다 먼저 아픔을 알게 했던,
현실이 갈라놓은 선 이쪽 저쪽에서
들킬세라 서둘러 자리를 비켜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보고 싶었고
가까이서 느끼고 싶었지만
애당초 가까이 가지도 못했기에 잡을 수도 없었던,
외려 한 걸음 더 떨어져서 지켜보아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음악을 듣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무슨 일을 하든간에 맨 먼저 생각나는 사람,
눈을 감을수록 더욱 선명한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기어이 접어두고
가슴 저리게 환히 웃던,

잊을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빛은 그게 아니었던,

너무도 긴 그림자에 쓸쓸히 무너지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덮어두고 지워야 할 일이 많겠지만
내가 지칠때 까지 끊임없이 추억하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는 마지막이란 말을
절대로 입에 담고 싶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르다 부르다 끝내 눈물 떨구고야 말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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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수많은 사람중의 한 사람

그대 진정 나를 사랑했었거든 사랑했다 말하지 말고
떠날 일입니다.떠난 다음에는 고개를 돌리지 말고
쓸쓸히 걷는 모습 또한 보여 주지도 말 일입니다
서로 가는 길이 틀릴지라도 이 땅 위에 숨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나는 그대에게 상처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그대의 삶에 힘겨운 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대 진정 나를 떠났거든 내가 있었다는 기억마저
잊어버릴 일입니다.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우리, 인연이 끊기지 않아 어쩌다 길 모퉁이에
서 마주치면 세상의 수 많은 사람중의 한 삶이
거니 가볍게 생각할 일입니다. 사랑했기 때문에 서로의
앞날을 기꺼이 축복할 수 있는 우리 두 사람이
될 일입니다.이별했다고 해서 서로의 가슴에 아픈
상처로 남아 있지 말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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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은 듯이 아물 날


살다 보면 때로
잊을 날도 있겠지요.
잊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무덤덤해질 날은 있겠지요.

그 때까지 난
끊임없이 그대를 기억하고
그리워할 것입니다.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간직하기 위해서.

살다 보면 더러
살 만한 날도 있겠지요.
상처받은 이 가슴쯤이야
씻은 듯이 아물 날도 있겠지요.

그 때까지 난
함께 했던 순간들을 샅샅이 끄집어내어
내 가슴의 멍자욱들을 키워나갈 것입니다.
그대가 그리워서가 아니라
그대를 원망해서도 아니라
그대에 대해 영영
무감각해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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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부터 비는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디까지 걸어야 내 그리움의 끝에 닿을 것인지.
걸어서 당신에게 닿을 수 있다면 밤 새도록이라도 걷겠지만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버리고 나는 마냥 걷기만 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도 그냥 건성으로 지나치고
마치 먼 나라에 간 이방인처럼 고개 떨구고
정처없이 밤길을 걷기만 했습니다.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도 있다지만
짧은 이별일지라도 나는 못내 서럽습니다.
내 주머니 속에 만지작거리고 있는 토큰하나,
이미 버스는 끊기고 돌아갈 길 멉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걸어서 그대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대의 마음으로 갈 수 있는 토큰하나를 구할 수 있다면
나는 내 부르튼 발은 상관도 안 할 겁니다.

문득 눈물처럼 떨어지는 빗방울,
그때서야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아아 난 모르고 있었습니다.
내 온 몸이 폭삭 젖은 걸로 보아
진작부터 비는 내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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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기쁨이라는 것은 언제나 잠시뿐, 돌아서고 나면
험난한 구비가 다시 펼쳐져 있는 이 인생의 길.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할 수 없이 울적할 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거릴 때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나는 더욱 소망한다.
그것들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화사한 꽃밭을 일구어 낼 수 있기를.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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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1


밤새 소리가 납니다. 내 혼곤한 잠 속으로 밀려와 자꾸만 울어예입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그대와 만나고 온 날이면 내 꿈 속에는 꼭 밤새가 나릅니다.
이상할 것도 없지요. 떠나야 하나 떠날 곳 없는 밤새. 저 무성한 어둠을 뚫고
오늘은 또 어디서 네 피곤한 날개짓을 쉬게 할 것인지. 가세요, 슬픈 그대.
내가 당신에게 짐이 되었다면 훌훌 떨쳐 버리고 멀리 날아가세요.
사랑이 없는 곳, 아픔이 없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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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2



누구나 조금씩은 눈물을 감추며 살지. 슬픔은 우리 방황하는 사랑의 한 형태인 것을.
진정 잊어야 할 아픔에 무감각해지기 위해 더러는 가슴에 황혼을 묻어야 할 때도 있느니.
그리하여 힘겨운 날개짓에도 별빛으로 내리는 소망 같은 것 하나쯤은 남겨둘 줄도 알아야
하느니, 밤에 우는 새여 날아라. 더 가혹한 슬픔이 네 앞에 높인다 할지라도 그 슬픔을
앞서 날아라. 이별보다 먼저 날아가라. 결코 눈물 떨구지 말고, 훨훨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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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


때로는
서럽게 울어보고 싶은 때가 있네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 넋두리도 없이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하여 정갈하게 울고 싶네
그리하여 눈물에 흠씬 젖은 눈과
겸허한 가슴을 갖고 싶네

그럴 때의 내 눈물은
나를 열어가는 정직한 자백과 뉘우침이 될 것이다.
가난하지만 새롭게 출발할 것을 다짐하는
내 기도의 첫 구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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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웃음


당신은 아는가?
당신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함이
내게는 더 큰 고통인 것을.
당신은 나에게 위안을 주려
거짓 웃음을 짓지만
그걸 바라보고 있는 나는
더욱 안타깝다는 것을.

그대여, 언제나 그대 곁에는
아픔보다 더 큰 섬으로 내가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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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한 자루의 촛불을 켜고 마주 앉아보라.
고요하게 일렁이는 불빛 너머로
사랑하는 이의 얼굴은 더욱더 아름다워 보일 것이고
또한, 사랑은 멀고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깝고 낮은 곳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웁거든
한 자루의 촛불을 켜두고 조용히 눈을 감아보라.
제 한 몸 불태워 온 어둠 밝히는 촛불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두 손 모으다 보면
당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은 어느새, 다른 곳이 아닌
바로 당신의 마음속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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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을 향하여


동굴을 지나온 사람이라야 동굴을 안다
그 습하고 어두운 동굴의 공포
때로 박쥐가 얼굴을 할퀴고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벌레가 몸에 달라붙어
뗄레도 떨어지지 않게 꽉 달라붙어
살점을 뜯고 피를 빨아먹는 으으 이 끔찍함!
발을 헛디뎌 수렁에도 빠졌다가
깨진 무릎 빠진 손톱으로 기어서 기어서라도
동굴을 지나온 사람이라야 동굴을 안다
동굴 밖 햇빛의 눈부심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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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지우기


물새떼 수평선 따라 날아갑니다. 그 중에 한 마리가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집니다. 그런데 떨어지는 것은 새가 아니라 끼룩끼룩 그들의 울음입니다. 해류가
마주치는 곳에서 한 사나이가 그물을 치고 있습니다. 파도에 휩쓸려 떠다니는 물새울음을
건집니다. 먼 날 잃어 버린 자기의 꿈을 건져냅니다. 연한 부리가 저녁 햇빛 받아
빛 날 때, 비로소 물새는 발톱으로 수평선을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워지는
것은 수평선이 아니라 물결치는 물결치는 그 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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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던 날보다



그대는 아는가, 만났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했다는 것을.

그대와의 만남은 잠시였지만
그로 인한 아픔은 내 인생 전체를 덮었다.
바람은 잠깐 잎새를 스치고 지나가지만
그 때문에 잎새는 내내 흔들린다는 것을.

아는가 그대. 이별을 두려워했더라면
애초에 사랑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이별을 예감했기에 더욱 그에게
열중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상처입지 않으면 아물 수 없듯
아파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네.
만났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사랑했고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여 진정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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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그에게서 사랑할 만한 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사랑은 줄수록 샘솟는 것입니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것.

누군가를 가장 사랑해야 할 때가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모든 게 순조롭고 편하게 느껴질 때?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도
사랑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못 믿을 사람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때,
그 사람이 하던 일에 실패해
실의에 빠져
절망의 구렁덩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그런 때야말로 사랑이 진정 필요한 것입니다.
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그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겪었던 슬픔과 고통,
그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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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멀었다


어느 순간,
햇빛이 강렬히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다.
그럴때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잠시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다.

내 사랑도 그렇게 왔다.
그대가 처음 내 눈에 들어온 순간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나는 세상이 갑자기 환해지는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로인해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줄
까맣게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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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다시 만나게 하소서


그대에게 가는 길이 멀고 멀어
늘 내 발은 부르터 있기 일쑤였네.
한시라도 내 눈과 귀가
그대 향해 열려 있지 않은 적 없었으니
이쯤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하소서.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는 사람.
생각지 않으려 애쓰면 더욱 생각나는 사람.
그 흔한 약속 하나없이 우린 헤어졌지만
여전히 내 가슴에 남아 슬픔으로 저무는 사람.
내가 그대를 보내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그대는 나의 사랑이니
이쯤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하소서.

찬이슬에 젖은 잎새가 더욱 붉듯
우리 사랑도 그처럼 오랜 고난 후에
마알갛게 우러나오는 고운 빛깔이려니.......
함께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은
내 인생 전체를 삼키고도 남으니
이쯤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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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


햇살이 맑아 그대가 생각났습니다.
비가 내려 그대가 또 생각났습니다.
전철을 타고 사람들 속에 섞여 보았습니다.
그래도 그대가 생각났습니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았습니다만 외려
그런때일수록 그대가 더 생각나더군요.

그렇습니다.
숱한 날들이 지났습니다만,
그대를 잊을 수 있다 생각한 날은
하루도 없었습니다.
더 많은 날들이 지나간대도 그대를
잊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날 또한 없을 겁니다.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지만
숱하고 숱한 날 속에서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어김없이 떠오르던 그대였기에
감히 내 평생 그대를 잊지 못하리라
잊지 못하리라 추측합니다.

당신이 내게 남겨준 모든 것들
하다못해 그대가 내쉬던 작은 숨소리
하나까지도 내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것은 이런 뜻은 아닐런지요.
언젠가 언뜻 지나는 길에라도
당신을 만날 수 있다면
스치는 바람편에라도 그대를 마주할 수 있다면
당신께 모조리 쏟아부어 놓고…
평펑 울음이라도…
그리하여 담담히 뒤돌아서기 위해섭니다.

아시나요 지금 내 앞에는
그것들을 돌려 줄 대상이 없다는 것
당신이 내게 주신 모든 것들을 하나 남기없이
들려 주어야 홀가분하게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아침엔
장미꽃이 유난히 붉었습니다.
그래서 그대가 또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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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수 없음은



사랑할 수 없음은
사랑받을 수 없습니다.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받지 못함은
견딜 만한 아픔입니다.
그러나,
사랑할 수 없음은
너무 아파 느낄 수도 없는 고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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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간이역에서 밤열차를 탔다 5


나는 늘 혼자서 떠났다.
누군들 혼자가 아니랴만
내가 막상 필요로 할 때 그대는 없었다.
그랬다, 삶이라는 건
조금씩 조금씩 외로움에 친숙해진다는 것.
그랬다, 사랑이라는 건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지는 것.

늦은 밤, 완행열차 차창 밖으로 별빛이 흐를 때
나는 까닭 없이 한숨을 쉬었다.
종착역 낯선 객지의 허름한 여인숙 문을 기웃거리며
난 또 혼자라는 사실에 절망했고,
그렇게 절망하다가 비 오는 거리 한 구석에서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당신을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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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해도


사랑한다 해도 그대는 고개를 돌립니다
벼르고 별렀던 말,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 해도
그대는 웬일인지 눈물만 글썽입니다.

다른 말은 하나도 못 하겠습니다
이 말을 꺼내기 위해 준비해 둔 숱한 말들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말만 부지런히 되뇌었는데
그대는 웬일인지 찻잔만 매만집니다

이제 나는 알았습니다.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그대가 아니라
그대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임을
내 사랑을 받아줄 수 없는 그대의 현실,
그것과 나는 이제 한 판 싸움을 벌일 것입니다
누가 나가떨어지든 간에 한 판 거창하게
싸움을 벌여볼 것입니다.벌여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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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아도 좋다



그대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아도 좋다.
찬비에 젖어도 새잎은 돋고
구름에 가려도 별은 뜨나니.

그대 굳이 손 내밀지 않아도 좋다.
말 한 번 건네지도 못하면서
마른 낙엽처럼 잘도 타오른 나는
혼자 뜨겁게 사랑한다.


나 스스로 사랑이 되면 그뿐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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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일기


그대가 날 부르지 않았나?
난 창문을 열고 하루종일 밖을 내다보았다.
비오는 이런 날이면 내 마음은
어느 후미진 다방의 후미진 낡은 구석 의자를 닮네.
비로소 그대를 떠나 나를 사랑할 수 있네.
안녕, 그대여.
난 지금 그대에게 이별을 고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의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려는 것이지.
당신을 만난 날이 비오는 날이었고
당신과 헤어진 날도 오늘처럼 비 내리는 날이었으니
안녕, 그대여.
비오는 이런 날이면 그 축축한 냄새로 내 기억은
한없이 흐려진다.
그럴수록 난 그대가 그리웁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안녕, 그대여.
비만 오면 왠지 그대가 꼭 나를 불러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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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소유하려고는 하지 마라.
그 소유하려고 하는 마음에 고통이 생기나니.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사랑을 했네.
추위에 떠는 상대를 보다 못해 자신의 온기만이라도 전해주려던 그들은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상처만 생긴다는 것을 알았네.
안고 싶어도 안지 못했던 그들은 멀지도 않고 자신들의 몸에 난
가시에 다치지 않을 적당한 거리에 함께 서 있었네.
비록 자신의 온기를 다 줄 수 없어도 그들은 서로 행복했네.

사랑은 그처럼 적당한 거리에 서 있는 것이다.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것이다.
가지려고, 소유하려고 하는 데서 우리는 상처를 입는다.
나무들을 보라.
그들도 서로 적당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지 않은가.
함께 서 있으나 너무 가깝게 서 있지 않는 것.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그늘을 입히지 않는 것.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사랑이 오래간다.

- '내가 길이 되어 당신께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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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조용히 손 내밀었을 때..

내 마음속에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람은
내가 가장 외로울 때
내 손을 잡아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손을 잡는다는 것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일인 동시에.
서로의 가슴속 온기를
나눠가지는 일이기도 한 것이지요..

사람이란
개개인이 따로 떨어진 섬과 같은 존재지만
손을 내밀어 상대방의 손을 잡아주는 순간부터
두 사람은 하나가 되기 시작합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었을 때,
그때 이미 우리는 가슴을 터놓은 사이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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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과 달빛 / 이정하


그대는
높은 담장 안
창문입니다.
거대한 벽 앞에
발 부르트던
나는
부르지 않아도
그대 곁에 다가가는
달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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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위해서라면



내 그대를 위해 하루에 담배 한 개비씩
덜 피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 그대를 위해 거창한 것은 해주지 못하나
아름답고 든든한 배경은 되어 주지 못하나
아주 작은 티끌 하나로도
그대의 근심은 되지 않겠습니다.

그대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
악보가 되어 주진 못하나
건반이 되어 소리를 내겠습니다.
건반마저 되지 못한다면
그대가 앉아 있는 의자라도 되겠습니다.

그대가 시집을 읽을 때
시는 되어 주지 못하나
안경이 되어 활자를 밝히겠습니다.
그마저 되지 못한다면
책 사이에 끼여 있는 책갈피라도 되겠습니다.

내 그대를 위해 작정한 모든 것이
그대 눈가의 잔주름 하나 지울 수 있다면
세상의 그 무엇이 된들 상관 있겠습니까.
있는 듯 없는 듯 그대 곁에서
가까이만 있겠습니다.
내 그대를 위해 거창한 것은 해주지 못하나
아름답고 든든한 배경은 되어 주지 못하나
행여 티끌 하나라도 근심은 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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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깊게 묵묵히 사랑하라


깊고 참된 사랑은
조용하고 말이 없는 가운데 나오나니
진실로 그 사람을 사랑하거든
아무도 모르게 먼저 입을 닫는 법부터 배우라

말없이 한 발자국 씩
그가 혹시 오해를 품고 있더라도
굳이 변명하지 마라
그가 당신을 멀리할수록
차라리 묵묵히 받아 들이라

마음 밑바닥에 스며드는 괴로움은
진실로 그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니
그가 당신을 멀리할 때는
차라리 조금 비켜 서 있으라

그대 사랑을 받아 들이지 않는
그를 위해 외려
두 손 모아 조용히 기도하다 보면
사랑은, 어디 먼 곳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마음속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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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창가사이로 촉촉한 얼굴을 내비치는 햇살같이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려주며 이마에 입맞춤하는
이른 아침같은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드러운 모카 향기 가득한 커피 잔에
살포시 녹아가는 설탕같이 부드러운 미소로 하루시작을
풍요롭게 해주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분히 흩어지는 벗꽃들 사이로
내 귓가를 간지럽히며 스쳐가는 봄바람같이
마음 가득 설레이는 자취로 나를 안아주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메마른 포도밭에 떨어지는 봄비 같은 간절함으로
내 기도 속에 떨구어지는 눈물 속에 숨겨진 사랑이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삶 속에서 영원히 사랑으로 남을..
어제와 오늘.. 아니 내가 알 수 없는 내일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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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씨


갈 수 없네.
그 아득한 거리 앞에
몸져눕는 나는
홀씨로 떨어져 죽어서야
그대 앞에 닿을까.

갈 수 없네.
살아서는 그대 곁에
닿을 수 없는 나는
언제나 그대 쪽으로
바람이 불기만을 기다리는
한 포기 가녀린
들꽃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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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그리운건


당신이 그리운건
내게서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이 다른 영혼에게 기대는 것이
사랑은 아닙니다
서로의 영혼이 홀로 설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아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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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빈터


가득 찬 것보다는
어딘가 좀 엉성한 구석이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낍니다

심지어는 아주 완벽하게
잘생긴 사람보다는
외려 못생긴 사람에게
자꾸만 마음이 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난 나의 많은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어지지요

조금 덜 채우더라도
우리 가슴 어딘가에
그런 빈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밑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가 조금 어리 숙할 수는 없을까요

그러면 그런 빈터가
우리에게 편안한 휴식과
생활의 여유로운 공간이 될 터인데

언제까지나
나의 빈터가 되어주는 그대
그대가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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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오솔길을 걸으며


사람에겐 누구나 홀로 있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낙엽 밟는 소리가 바스락거리는 외가닥 오솔길을
홀로 걷고 싶기도 할 때가 있고,

혼자서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명상에 잠기고 싶은 때도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서...

인생은 달리기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멈춰 서서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결코 중단하거나 포기가 아니라
앞으로 보다 가치롭게
나아갈 길에 대비한 '자기 성찰' 일 것입니다.

삶의 오솔길을 걸으며 나는 느낍니다.

마른 가지에서 연분홍빛 꿈이 움트던 지난 봄,
그리고 또 여름에는 살진 가을 열매를 맺기 위해
내리쬐는 불볕도 마다 않고 헌신적으로 받아내던
잎새의 수고로움. 아아 그러한 삶의 과정이 있었기에

가을이면 온갖 초목들은 어김없이
삶의 결실들을 거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는 과연 어떤 수고로움으로 어떤 결실을 맺었는가?
자기의 모든 것을 태워 열매를 맺는 단풍잎처럼
과연 너는 너의 열매를 맺기 위해 땀과 눈물을 쏟았다고
떳떳이 자부할 수 있는가?'

그렇게 물어 볼 때마다 나는 비로소 초목들보다
성실치 못했던 내 모습에 낭패해 하며
가을을 맞는 내 삶의 길목에서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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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안의 기쁨


떠났음으로 당신이
내 속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보내야 했음으로 슬픔이 오기 전
기쁨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네

훗날 나는 다시 깨닫기를 바라네
이 세상 태여나 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 한사람 때문에 못내 가슴 아팠을지라도
내가 간직한 그 사랑으로 인해
내 삶은 아름다웠고
또 충분히 행복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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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가 살아가다가 무덤덤해지면


사랑이여,
이제 우리 슬픔을 슬픔이라 생각지 말자
아픔을 아픔이라 여기지 말자
지난날들이 늘 눈물겨웠다면 말하지 말자

때론 바람에 흔들리며 모진 세상의 풍파 속에서
먼지처럼 떠돌다가 그대와 내가 영원히 못한다 하더라도
다시는 못 만날 거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저, 그대를 만나 행복했었다고,
다시 그대를 만날 수 있는 날 있으리라고
맘 편히 생각하자
어차피 우리 사랑은 그렇게 생겨 먹었는 걸

살아가다가 살아가다가 무덤덤해지는 날도 있으니
그대 우리 사랑도 서로의 삶에
눈부신 햇살이었다는 것을 자인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사랑이여,
내 삶에 늘 멀고 아득했던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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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곁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


행복이라는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곳은
결코 비옥한 땅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떻게 보면
절망과 좌절이라는 돌멩이로 뒤덮인
황무지일수도 있습니다

한번쯤 절망에 빠져보지 않고서,
한번쯤 좌절을 겪어보지 않고서,

우리가 어찌
행복의 진정한 값을 알수 있겠습니까.

절망과 좌절이라는 것은,
우리가 참된 행복을 이루기위한
준비 과정일 뿐입니다

따라서 지금 절망스럽다고
실의에 잠겨있는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금 잠깐 좌절을 겪었다고해서
내내 한숨만 쉬고 있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입니다.

더 큰 행복을 위해,
참된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아닙니까.

돌멩이를 부지런히 들어내야
옥토를 만들 수 있듯이
말입니다.

절망과 좌절이라는 것이
설사 우리의 삶에
바윗덩어리와 같은 무게로
짓눌러 온다하더라도

그것을
무사히 들어내기만 한다면,

그 밑에는 틀림없이
눈부시고 찬란한 행복이라는 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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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1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외로우냐고 묻지 마라.
어떤 풍경도 사랑이 되지 못하는 빈 들판
낡고 해진 추억만으로 한 세월 견뎌왔으니.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누구를 기다리느냐고도 묻지 마라.
일체의 위로도 건네지 마라.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을 마음 속에 섬기는 일은
어차피 고독한 수행이거니.

허수아비는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고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외롭다.
사랑하는 그만큼 외롭다.



허수아비 2


살아가다 보면 사랑한다는 말만으로
부족한 것이 또한 사랑이었다.
그에게 한 걸음도 다가갈 수 없었던 허수아비는,
매번 오라 하기도 미안했던 허수아비는
차마 그를 붙잡아 둘 수 없었다.
그래서 허수아비는 한곳만 본다.
밤이 깊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



허수아비, 그 이후


밤만 되면 허수아비는 운다.
늙고 초라한 몸보다도
자신의 존재가 서러워
한없이 운다.

한낮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서있지만
밤만 되면 허수아비는 목이 메인다.
속절없이 무너져
한없이 운다.


시집 *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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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향한 그리움이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
커피 향처럼 피어오르는 날에는

세상을 향한
나의 창문을 닫아 버리고
오직 당신을 향해
내 마음의 문을 엽니다.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
빨간 꽃봉우리처럼
내 마음의 잎새마다
가득히 맺혀 있는 날에는

세상을 향한
나의 창문을 모두 닫아 버리고
오직 당신을 향해
내 영혼의 촛불을 높이 밝혀 듭니다.

당신이 아니면
그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나의 병은 사랑입니다.

당신이 아니면
그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나의 병은 그리움입니다.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
쏟아지는 햇살처럼 눈부신 날에는
나는 음악을 듣고 詩를 씁니다.

당신을 향한 내 영혼의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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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없는 한가지


세상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만을 꼽으라면
그건 바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대는 나보고 사랑하지 말라 하시지만
그럴수록
나는 그대에게 더 목매단다는 것을

물은 물고기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흘러갈 수 있지만
물고기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음을

당신 대수롭지 않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는 그 차이가
내 슬픔의 시작인 것을

그러니 그대는 그저 모른척 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 발붙이고 있는 한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대를 사랑하는 일이 내겐 곧
숨쉬며 살아가는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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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별


너를 처음 보았을 때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너를 바라보는 기쁨만으로도
나는 혼자 설레었다.

다음에 또 너를 보았을 때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를 깨닫곤
한숨 지었다. 너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 마음엔
자꾸만 욕심이 생겨나고 있었던 거다.

그런다고 뭐 달라질 게 있으랴.
내가 그대를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다
당장 숨을 그둔다 해도
너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냉랭하게 나를 내려다볼밖에.

내 어둔 마음에 뜬 별 하나.
너는 내게 가장 큰 희망이지민
가장 큰 아픔이기도 했다.


시집: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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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좋아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아는가, 네가 있었기에
평범한 모든 것도 빛나 보였다.

네가 좋아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네가 웃을 때 난 너의 미소가 되고 싶었으며
네가 슬플 때 난 너의 눈물이 되고 싶었다.

네가 즐겨 읽는 책의 밑줄이 되고 싶었으며
네가 자주 가는 공원의 나무의자가 되고 싶었다.

네가 보는 모든 시선 속에 난 서 있고 싶었으며
네가 간혹 들르는 카페의 찻잔이 되고 싶었다.
때로 네 가슴 적시는 피아노 소리도 되고 싶었다.

아는가, 떠난 지 오래지만
너의 여운이 아직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것처럼
나도 너의 가슴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싶었다.

사랑하리라 사랑하리라며
네 가슴에 저무는
한 줄기 황혼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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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한 편지

 

 

그대를 기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은 그 이상 내게도 큰
기쁨이었습니다.설령 그것이 헤어짐을 뜻한다 했어도 그랬습니다
그대를 보내고 나서도 내 마음에 걸린 것은 그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데 있었습니다.
그대의 밝은 웃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그대를 보내는 일이라니.
진정한 우리 사랑을 위해서는 그대로부터 벗어나야 할 필요도
있음을.
이젠 한 발자국 물러서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대를 그냥 두어 볼
작정인 것이지요. 세월이 흐르고 흘러 우리의 일이 까맣게
잊혀진다 해도 언젠가는 내 사랑 그대가 알아 주리라
믿어 보겠습니다. 그때까지.... 그대여 안녕... 건강해야 다시 만날 수 있으리.
나 또한 몸져눕지 않고 그대가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서 있겠습니다. 훗날 그대가 돌아왔을 때, 낯선 기분이 들지
않도록 모든 것을 제자리에 가만히 놓아 두겠습니다. 내 할수
있는 그것뿐. 그때까지 그대여 내내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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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웃음


당신은 아는가?
당신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함이
내게는 더 큰 고통인것을.
당신은 나에게 위안을 주려
거짓 웃음을 짓지만
그걸 바라보고 있는 나는
더욱 안타깝다는 것을.

그대여, 언제나 그대 곁에는
아픔보다 더 큰 섬으로 내가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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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수


나 이렇게 서 있네.
슬픔이 물방울처럼 뚝뚝 떨어지는
비 오는 간이역 은사시나무.
나 이렇게 서 있네.
그대를 이제 보내기 위해
그대에게 결코 다가서지 않기 위해
나 이렇게
뿌리 박고 서 있네.

하지만 어쩌할 것인가.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여기 없는 것을.
내 영혼은 벌써 그를 따라 나서고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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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1


언제나 혼자였다.
그 혼자라는 사실 때문에 난
눈을 뜨기 싫었다.

이렇게 어디로 휩쓸려가는가.


섬 2


바다엔 잔뜩 안개뿐이었어요.
그 나마 위안이던 먼 바다의 배는
자취를 감추었고 희미한 별빛만이 나를 찾아주었어요.
무엇이 그리움인지도 모르면서.
그리움 또한 이유없이 가슴앓이…….
섬은 내게 가장 큰 희망이지만 오늘은 아픔이기도 해요.
나는 왜 그리운 것, 갖고픈 것을 멀리 두어야 하나요.


- 이정하 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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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 한쪽에


세상의 울타리 안쪽에는
그대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가 없었습니다.
스쳐갈 만큼 짧았던 만남이기도 했지만
세상이 그어둔 선 위에서
건너갈 수도 건너올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
쓸쓸하고 어둡던 내 가슴 안쪽에
소망 이라는 초 한 자루를 준비합니다.
그 촛불로
힘겨운 사랑이 가져다준 어두움을
조금이라도 밀어내주길 원했지만
바람막이 없는 그것이 오래 갈 리 만무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따뜻한 자리를 마련해둔다는 것.
아아 함께 있는 사람들은 모를 겁니다.
오지 않을 사람을 위해
의자를 비워둘 때의 그 쓸쓸함을.
그 눈물겨움을.

세상이라 이름 붙여진 그 어느 곳에도
그대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대가 있었기에 늘 나는
내 가슴 속에 초 한 자루를 준비합니다.
건너편 의자도 비워둡니다.


- 이정하 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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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것 그대에게 주었으므로


슬픈 사랑아
내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네
내 가진 것은 빈손뿐
더 이상 그대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네
세상 모든 것이 나의 소유가 된다 하더라도
결코 그대 하나 가진 것만 못한데

슬픈 사랑아
내 모든 것 그대에게 주었으므로
더 이상 그대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네
주면 줄수록 더욱 넉넉해지는
이 그리움밖에는


시집 :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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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에게


난 압니다
네 가슴속에 차지하고 있는 나의 흔적이
아직은 보잘것 없음을.
그러나 난 또 믿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흐르면
내 모든 노력들이 헛되지 않아
너의 몸 속을 가득 채울 맑은 피로
내가 떠돌게 될 것을

난 압니다.
네가 좋아하는 연분홍빛 노을,
난 너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연분홍빛 노을로 네 가슴에 남게 될 것을.


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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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소나기 같은 사람이여,
슬쩍 지나쳐놓고 다른 데 가 있으니
나는 어쩌란 말이냐.
이미 내 몸은 흠뻑 젖었는데

그대 가랑비 같은 사람이여,
오지 않는 듯 다가와 모른 척하니
나는 어쩌란 말이냐,
이미 내 마음까지 젖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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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물이 흘러가는 것에도 길이 있고
마음이 흘러가는 것에도 길이 있네.
당신이 그리워 당신에게로 흘러가는
물길 같은 내 마음이여.
조용히 고여 당신을 비추기로 하고
때로는 출렁이다 당신을 조각내기도 한다.
물이 흘러가는 것에도 길이 있고
마음이 흘러가는 것에도 길이 있네.
호수 같은 당신께로 날마다 자맥질하는
바다 같은 당신께로 온전히 주고야 마는
물길 같은 내 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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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이유


만남을 전제로 했을 때
기다림은 기다림이다.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았을 때
기다림은 더 이상 기다림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엔, 오지 못할 사람을 기다리는,
그리하여 밤마다 심장의 피로 불을 켜
어둔 길을 밝혀두는 사람이 있다.

사랑으로 인해
가슴 아파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오지 못할 걸 뻔히 알면서도
왜 바깥에 나가 서 있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왜 안 되는가를.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더라도
기다리는 그 순간만으로 그는
아아 살아 있구나 절감한다는 것을.
쓰라림뿐일지라도 오직 그 순간만이
가장 삶다운 삶일 수 있다는 것을


시집: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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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내 가진 잉크로는 그릴 수 없네
그대가 떠나고 난 뒤
시꺼멓게 탄 내 가슴의 숯검정으로
비로소 그릴 수 있는 것


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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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마음과 마음 사이에
무지개 하나가 놓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시집: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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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다림이 있다면 행복하다 / 이정하


사랑이 가슴에 넘칠 때
진실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사랑의 감정을 가슴 가득히 담고
살아갈 때 누구라도
행복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늘 되풀이되는 일과 속에서
정신없이 맴돌다가도 가끔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 난
이런 소망을 가만히 외어 봅니다
언제나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라고..

나의 이 바람은 큰 사랑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주변에 있는 것들부터
우선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자는
아주 작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실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면서도
정작 마음의 문은 꼭꼭
닫아 두는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은 결코 큰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고

내 주변에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되어 가지를
뻗치는 게 사랑이라고
감히 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랑이란 것은
관심을 갖지 않으면 결코
솟아나지 않는 정입니다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솟아나는 정이 아닌 것이지요

퍼낼수록 다시금 맑고도 그득하게
고여 오는 샘물

당신도 당신의 가슴 속에 있는
사랑이라는 샘물을 자주
그리고 되도록
많이 퍼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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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내가 가까이하고픈 것들,
내가 간직하고픈 것들은 언제나
내 손길이 닿기 전에 저만큼 사라져 버리고
잡히는 것은 늘 쓸쓸한 그리움뿐이었지요.
나는 이제 그만 그리움과 작별하고 싶습니다.
내 평생 그것과는 이웃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룻밤도 돌아눕지 않는 그리움,
그 지긋지긋한 상념들......

금방이라도 내게 다가와 따뜻한 손 내밀 것 같은 그대여,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 있기에 이토록 더디 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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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나라 / 이정하


내 사랑은
탄식의 아름다움으로 수놓인
황혼의 나라였지.

내 사랑은
항상 그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가도 가도 닿을 수 없는 서녘 하늘,
그곳에 당신 마음이 있었지.

내 영혼의 새를 띄워 보내네.
당신의 마음
한 자락이라도 물어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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