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시 모음> 오세영의 '새해 새날은' 외 + 새해 새날은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눈송이를 털고 침묵으로부터 일어나 햇빛 앞에 선 나무 나무는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긴 동면의 부리를 털고 그 완전한 정지 속에서 날개를 펴는 새 새들은 비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해 새날이 오는 길목에서 아득히 들리는 함성 그것은 빛과 빛이 부딪혀 내는 소리 고요가 만들어 내는 가장 큰 소리 가슴에 얼음장 깨지는 소리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얼어붙은 계곡에 실낱같은 물이 흐르고 숲은 일제히 빛을 향해 나뭇잎을 곧추세운다. (오세영·시인, 1942-) + 새해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너 나무들 가지를 펴며 하늘로 향하여 서다 봄비 꽃을 적시고 불을 뿜는 팔월의 태양 거센 한 해의 풍우를 이겨 또 하나의 연륜이 늘리라 하늘을 향한 나무들 뿌리는 땅 깊이 박고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피천득·수필가, 1910-2007) + 새해엔 바람 불 때 흔들리지 않아야겠다 요염한 달빛, 마음 뺏기지 말아야겠다 나뭇가지 꺾어지고 잃어버린 나뭇잎 헤아리며 긴긴 밤, 가슴 아파 울어야했으니 긴 세월 맺은 열매 몇 알 더디 오는 주인 기다리는 동안 썩거나, 상실하지 않도록 보존해야겠다 (손희락·시인, 대구 출생) + 신년송(新年頌) 사랑아 언제나 제일 먼저 나는 네가 보고 싶다. 늘 함께 있으며 처음인 듯 새롭게 네가 보고 싶다. 너와 함께 긴 여행을 떠나고 싶고 너와 함께 가장 정직한 시를 쓰고 싶고 너와 함께 가장 뜨거운 기도를 바치고 싶다. 내가 어둠이어도 빛으로 오는 사랑아 말은 필요없어 내 손목을 잡고 가는 눈부신 사랑아 겨울에도 돋아나는 네 가슴속 푸른 잔디 위에 노란 민들레 한 송이로 네가 앉아 웃고 있다. 세상에 너 없이는 희망도 없다. 새해도 없다. 내 영혼 나비처럼 네 안에서 접힐 때 나의 새해는 비로소 색동의 설빔을 차려 입는다. 묵은 날도 새 연두 저고리에 자줏빛 옷고름을 단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새해 아침, 행복을 꿈꾸며 새해 아침 우리는 사랑 아닌 것 기쁨 아닌 것 어디에도 없어라 찬물로 세수하고 가지런히 앉은 아침이여! 솟아오르는 희망으로 천길 바다 속 햇살을 길어 올리네 풀 먹인 마음으로 다듬질한 생각으로 때때옷 입고 세배하는 아침이여! 말씀마다 뜻있고 뜻마다 삶의 양식 되니라 한 알의 씨앗으로 한 해의 꿈을 심는 아침이여! 믿음의 뿌리마다 곧고 반듯한 기도가 되니라 새해 아침 우리는 소망 아닌 것 행복 아닌 것 어디에도 없어라 (이채·시인) + 새아침에 모든 것이 뒤바뀌어 질서를 잃을지라도 성진(星辰)의 운행만은 변하지 않는 법도를 지니나니 또 삼백예순날이 다 가고 사람 사는 땅 위에 새해 새아침이 열려오누나.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이 영겁(永劫)의 둘레를 뉘라서 짐짓 한 토막 짤라 새해 첫날이라 이름지었던가. 뜻 두고 이루지 못하는 恨은 태초 이래로 있었나보다 다시 한번 의욕을 불태워 스스로를 채찍질하라고 그 불퇴전의 결의를 위하여 새아침은 오는가. 낡은 것과 새것을 의와 불의를 삶과 죽음을 ㅡ 그것만을 생각하다가 또 삼백예순날은 가리라 굽이치는 산맥 위에 보랏빛 하늘이 열리듯이 출렁이는 파도 위에 이글이글 태양이 솟듯이 그렇게 열리라 또 그렇게 솟으라 꿈이여! (조지훈·시인, 1920-1968) + 새해엔 새 마음의 눈으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새해 새 아침에 우리는 그 길을 새로이 가리라. 세상에 뜻 아닌 것이 없고, 새롭게 보면 새 소식이 아닌 게 없으리라. 세상에 새 것만이 있는 게 아니라 새 눈으로 보면 낡은 것도 새 것이 되리라. 새해엔 새 눈으로 천사처럼 착하고 아름답게 새 마음의 눈으로 다시 보리라. 새 마음 새 뜻으로 너와 내가 소통하리니, 우린 서로에게 새 소식이 되리라. 새해에 새 길을 나서며 새롭고 뜻 있는 사람이 되리니, 새해에는 더욱 서로 사랑하리라. (이정우·신부 시인, 1946-) + 새해를 향하여 다시 받는다 서설처럼 차고 빛부신 희망의 백지 한 장 누구나 공평하게 새로 받는다 이 순백의 반듯한 여백 위에 무엇이든 시작하면 잘될 것 같아 가슴 설레는 시험지 한 장 절대로 여벌은 없다 나는 또 무엇부터 적을까? 소학교 운동회날 억지로 스타트 라인에 선 아이처럼 도무지 난감하고 두렵다 이번만은 기필코..... 인생에 대하여 행복에 대하여 건강에 대하여 몇 번씩 고쳐 쓰는 답안지 그러나 정답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재수인가? 삼수인가? 아니면 영원한 未知修인가? 문득 내 나이가 무겁다 창문 밖 늙은 감나무 위엔 새 조끼를 입고 온 까치 한 쌍 까작까작 안부를 묻는다, 내내 소식 없던 친구의 연하장처럼 근하 신년! 해피 뉴 이어! (임영조·시인, 1943-2003) + 새해 아침의 비나리 새해 새날이 밝았습니다, 아버지 해마다 주시는 새날이 온 땅에 밝았습니다. 올해에는 하늘을 기르게 해주십시오. 우리 몸 속에 심어 주신 하늘 싹 고이 길러 마침내 하늘만큼 자라나 사람이 곧 하늘임을 스스로 알게 해주시고 칼의 힘을 믿는 이들에게는 칼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게 해주시고 돈의 힘을 의지하는 이들에게는 돈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게 해주시고 부끄러운 성공보다 오히려 떳떳한 실패를 거두게 하시고 유명한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참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착한 일 하다가 지친 이들에게는 마르지 않는 샘을 가슴 깊이 파주시고 쓰러지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대신에 길 떠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하시고 올해에는 하늘을 품게 해주십시오. 가슴마다 작은 가슴마다 우주만큼 큰 하늘을 품고 한발 두발 세발 후회 없는 날을 걸어가게 해주십시오. (이현주·목사 시인) + 새해 두어 마디 말씀 새해 왔다고 지난날보다 껑충껑충 뛰어 열일곱짜리 풋 가슴 널뛰기로 하루 아침에 찬란한 세상에 닿기야 하리오? 새해도 여느 여느 새해인지라 궂은 일 못된 일 거푸 있을 터이고 때로 그건 것들을 칼로 베이듯 잘라버리는 해와 같은 웃음소리 있을 터이니 우리 아낙네들이시여 쥔 양반과 다툴 때 조금만 다투고 사랑도 그냥 사랑이 아니라 눈을 부릅떠서 지지리 못난 사내 짓 고쳐 주시압. 에끼 못난 것! 철썩 볼기라도 때리시압. 그뿐 아니라 우리 아낙네들이시여 우리 집만 문 잠그고 으리으리 살 게 아니라 더러는 지나가는 이나 이웃이나 잘 안 되는 듯하면 뭐 크게 떠벌릴 건 없고 그냥 수숫대 수수하게 도우며 살 일이야요. 안 그래요? 우리 아낙네들이시여 예로부터 변하는 것 많아도 그 가운데 안 변하는 심지 하나 들어 있어서 그 슬기 심지로 우리 아낙네들 크낙한 사랑이나 훤히 밝아지이다. 마침내 우리 세상 훤히훤히 밝아지이다. (고은·시인, 1933-)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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