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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직 예수 그리스도
세상살이/시

시인의 새해 시 모음

by 어린양01 2015. 12. 22.

시인의 새해 시 모음

 

* 새해의 기도 - 이성선

 

새해엔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
가장 맑은 눈동자로
당신 가슴에서 물을 긷게 하소서
기도하는 나무가 되어
새로운 몸짓의 새가 되어
높이 비상하며
영원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게 하소서
새해엔, 아아
가장 고독한 길을 가게 하소서
당신이 별 사이로 흐르는
혜성으로 찬란히 뜨는 시간
나는 그 하늘 아래
아름다운 글을 쓰며
당신에게 바치는 시집을 준비하는
나날이게 하소서

 

 

* 새해 인사 - 김현승

오늘은
오늘에만 서 있지 말고
오늘은
내일과 또 오늘 사이를 발굴러라

건너 뛰듯
건너 뛰듯
오늘과 또 내일 사이를 뛰어라

새옷 입고
아니, 헌옷이라도 빨아 입고
널뛰듯
널뛰듯
이쪽과 저쪽
오늘과 내일의 리듬 사이를
발굴러라 발굴러라
춤추어라 춤추어라

 

 

 

* 신년기원(新年祈願) - 김현승

몸 되어 사는 동안
시간을 거스를 아무도 우리에겐 없사오니
새로운 날의 흐름 속에도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희망-당신의 은총을
깊이깊이 간직하게 하소서

육체는 낡아지나 마음으로 새로웁고
시간은 흘러가도 목적으로 새로워지나이다
목숨의 바다-당신의 넓은 품에 닿아 안기우기까지
오는 해도 줄기줄기 흐르게 하소서

이 흐름의 노래 속에
빛나는 제목의 큰 북소리 산천에 울려퍼지게 하소서!

 

 

 

* 덕담 - 도종환

지난해 첫날 아침에 우리는
희망과 배반에 대해 말했습니다
설레임에 대해서만 말해야 하는데
두려움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산맥을 딛고 오르는 뜨겁고 뭉클한
햇덩이 같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않고
울음처럼 질펀하게 땅을 적시는
산동네에 내리는 눈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오래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느티나무에 쌓이는
아침 까치소리 들었지만
골목길 둔탁하게 밟고 지나가는
불안한 소리에 대해서도
똑같이 귀기울여야 했습니다
새해 첫날 아침
우리는 잠시 많은 것을 덮어두고
푸근하고 편안한 말씀만을
나누어야 하는데
아직은 걱정스런 말들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올해도 새해 첫날 아침
절망과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 신년시(新年詩) - 조병화


흰 구름 뜨고
바람 부는
맑은 겨울 찬 하늘
그 無限을 우러러보며
서 있는
大地의 나무들처럼

오는 새해는
너와 나, 우리에게
그렇게 꿈으로 가득하여라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영원한 日月의 영원한
이 回轉 속에서

너와 나, 우리는
約束된 旅路를 동행하는
有限한 生命


오는 새해는
너와 나, 우리에게
그렇게 사랑으로 더욱더
가까이 이어져라

 

 

 

* 새해 새날은 - 오세영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눈송이를 털고
침묵으로 일어나 햇빛 앞에 선 나무
나무는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긴 동면의 부리를 털고
그 완전한 정지 속에서 날개를 펴는 새
새들은 비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해 새날이 오는 길목에서
아득히 들리는 함성
그것은 빛과 ?이 부딪혀 내는 소리
고요가 만들어 내는 가장 큰 소리
가슴에 얼음장 깨지는 소리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얼어붙은 계곡에
실낱같은 물이 흐르고
숲은 일제히 빛을 향해
나뭇잎을 곧추세운다

 

 

 

 

 

* 닭이 울어 해는 뜬다 - 안도현


당신의 어깨 너머 해가 뜬다
우리 맨 처음 입맞출 때의
그 가슴 두근거림으로, 그 떨림으로
당신의 어깨 너머

첫닭이 운다
해가 떠서 닭이 우는 것이 아니다
닭이 울어서 해는 뜨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처음 눈 뜬 두려움 때문에
우리가 울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울었기 때문에
세계가 눈을 뜬 것이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하고 나하고는
이 아침에 맨 먼저 일어나
더도 덜도 말고 냉수 한 사발 마시자
저 먼 동해 수평선이 아니라 일출봉이 아니라
냉수 사발 속에 뜨는 해를 보자
첫닭이 우는 소리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세상의 끝으로
울음소리 한번 내질러보자

 

 

 

 

* 설날 아침에 - 김종길